미국에는 한국 유학생이 너무 많아서, 조그마한 미국학교에 가도 꼭 한국 학생을 볼 수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또 유학 생활을 할 때 같은 학교에 한국학생이 있으면, 영어를 쓰는 시간이 줄어들어 공부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곤 했다. 요즘 점점 교환학생으로 미국으로 오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이 말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내가 처음에 이 학교로 왔을 때는 나 외에 두 명의 한국학생이 있었지만, 그 후로 계속 학생들이 늘어나 이제는 고등학교에만 현재 일곱 명이나 된다. 다음 학기에 또다시 새 교환학생이 들어온다고 하니, 친구들은 ‘Korean’들이 학교를 다 장악하려 한다고 장난스레 말하곤 한다. 그럼 같은 학교에 한국학생들이 있는 것이 좋은가? 음, 나쁘지 않다.

내가 처음 몇 개월 미국 생활을 할 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거의 못했고, 학교에서는 아는 것도 없었을 뿐더러,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에 너무나 벅찼다. 그 때 내 한국인 친구 두 명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그 친구들은 교환학생은 아니었고, 미국에 사시는 친척집에서 같이 살면서 학교에 다니는 보통 유학생이었다. Fred는 나보다 1년 반 정도 전에 온 아이였고, 말이 많은 친구라 내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을 도와주었다. Chi는 5학년 때 미국으로 왔다고 하는데, 조용하지만 영어를 잘해서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많이 알려주었다. 또한 가끔씩은 그 친구들 집에 놀러가 친척 분들도 뵙고, 대접해주시는 한국 음식도 맛있게 먹곤 했다. 미국 생활에 초보였던 나에게 두 친구들은 좋은 선배들이었고, 정신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서 우리 학교에 한국 학생이 4명이 더 왔다. 그 중 9학년의 Emily와 11학년 William은 여름방학 때 같이 ESL캠프를 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미 얼굴을 알고 있었다. Fred의 동생이며 9학년이었던 Eric은 형과 너무 닮았다고 해서 아이들이 ‘The Freds’라고 부르기도 했다. 같은 학년 여자아이 Ginny는 아직까지는 친해질 기회가 많이 없었지만, 말수가 많고 활달하여서 친구들을 금방 사귀었다. 갑자기 불어난 한국학생들 때문에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학교 분위기는 많이 밝아졌다. 우리는 학교에서는 최대한 영어로 대화하려고 노력했고, 적응하는 데에 서로 도움을 주었다. 물론 이 중에는 친구들과의 크고 작은 갈등들도 있었지만, 먼 미국 땅에서 우리는 서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올해 초,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미국 공립학교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던 11학년 여자아이 Selena가 왔다. 어떻게 오기 전부터 나를 알고 메일을 보내서, 내가 학교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었다. 항상 학교에서는 어리바리했던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어서 좋았다. 한번은 학교의 한국 아이들 몇 명을 초대해서 같이 놀기도 했고, 한국 요리재료를 구해서 잡채나 김치볶음밥을 해먹기도 했다.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물론 그 후로 한국말을 많이 쓰게 됐지만 영어 공부를 하는 데도 서로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현재는 나를 포함해서 6명의 Junior, 2명의 Freshman이 있다.

한국 학생들이 많아져서 좋은 것은 서로 공감대가 금방 형성된다는 것이다. 한국과 멀리 떨어져 혼자 미국 생활에 적응하려 한다면, 많이 외롭고 벅찰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들이 몇 명 있으면, 서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이야기도 잘 통한다. 물론 사람들이 말하듯, 한국 친구들과는 한국말을 쉽게 쓰게 된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학교에서 가끔씩 사용하는 것일 뿐이고, 한국말 사용하는 시간을 유용하게만 쓴다면 오히려 그 시간이 자신에게 유익이 될 수 있다. 다만 조심해야할 것은, 한국말로 욕을 한다든가 너무 크게 웃고 떠들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말은 조용하게 꼭 필요할 때만 써서, 다른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도록 해야겠다.

학교에 한국인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친구들도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우리나라말을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고, 한국 음식에 관심을 보이는 애들도 많다. 또한 같은 학년 친구들 몇 명은 이미, 내년 여름방학 때 우리와 같이 한국으로 여행 오기로 약속까지 했다. 한국 학생들이 많아지니, 이렇게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혼자 있는 것 보다는 많은 한국 학생이 같이 있을 때, 조금 더 바른 한국의 이미지를 알릴 수 있고, 혹시나 친구들에게 소수인종이라 차별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곧 한국으로 돌아갈 시점에 이 글을 쓴다. 이미 우리 학교 다수의 한국 유학생들은 비행기를 타고 떠났고, 지금쯤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 아이들에게 연락해 한번은 같이 만나 놀 계획이다. 학교에서 이곳 친구들은 수시로 말하곤 했다.

"I will miss all the Koreans this summer!"

- May 25,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