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쯤이면 벌써 배정이 난 예비 교환학생들도 있을 거고, 아직 배정이 안 난 사람들도 더러 있을거다. 나는 출국하기 일주일 전에 배정이 난 케이슨데, 정말 배정 났을 때의 그 기분은 9개월이 지난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지구 반대 편에 사는 낯 선 가족들과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보다도 나를 받아주겠다는 가정이 있다니! 하는 뭣 모를 감동이 앞선 던 그 때. 호스트 가족한테 메일도 보내고, 서로 facebook 친구 추가도 하고, 또 심지어는 facebook에서 채팅까지 하며 서로 만날 날만 손 꼽아 기다리고, 만나면 뭐라고 인사할까, 선물로는 뭐가 좋을까 하는 고민에 혼자 끙끙거리기도 했는데.

어찌됐든 시간은 흘러흘러 나는 지금 벌써 여기에서 이 사람들과 9개월이라는 시간을 함께했고 (정확히 말하면 8개월하구 조금 더!) 정말 별 일이 다 있었다. 만약 호스트 가족이 이 글을 여차저차해서 보게 된다면 정말 화나겠지만 사실 솔직히 말해서 같이 살면서 화나고 억울하고 분하고 짜증나는 일들 정말 많았다. 그치만 여기다 쓴다구 해서 있었던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줄줄이 다 쓰지는 않겠다. 그래도 내가 정말로 하고싶은 말은 져주는 게 곧 이기는 거라는 말이다.  지는 게 아니고 져 주는거다. 이길 수 있는데도 져 주는 거. 수 개월 같이 살면서 문제가 안 생기기란 불가능한 일이고 (물론 안 생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로 내 주변에서는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결국 중요한 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인데, 본인이 정말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천지차이다.

나한테는 호스트 여동생 한 명, 그리고 언니 한 명, 호스트 아저씨, 호스트 아줌마가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호스트 아줌마랑 여동생이랑 말다툼을 해본 적도 없고 문제가 생겼던 적도 없다. 정말이지 이 둘이랑은 날이 갈 수록 친해지고 정드는 거 같다. 호스트 여동생은 정말 지붕뚫고 하이킥에 나오는 해리랑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은데 (나보다 두 살 어리다.) 그래도 밉진 않다. 가끔 왜 저러나 싶을 때가 있지만 내 중2 중3 시절을 생각해보면 욕할 것도 없다. 그냥 그 나이 때는 다 그런 거 같다. 호스트 아줌마도 너무 착하시다. 정말 진짜 착하신 거 같다. 한 번도 나한테 뭐라고 하신 적 없고 정말 처음 왔을 때는 좀 무서워보였는데 진짜 착하시고 잘해주신다. 아 근데 정말 호스트 언니랑 아저씨는.. 말을 말아야지.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들이 많았다기보다도 우리 사이에는 정말 신경전이 잦았다. 특히 호스트 아저씨. 처음에는 아저씨가 내 말꼬투리 잡으면서 비아냥거리고 비꼴 때마다 말대꾸하고 따졌는데 이제는 그냥 무시한다. 정말 웃지도 않고 아무런 대답도 안하면 별로 안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내가 이 체험담을 통해 다른 교환학생들에게 정말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애초에 싸움은 하지도 말고 (여기서의 '싸움'은 주로 언쟁이겠죠~ 몸싸움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ㅎㅎㅎㅎ) 하게되더라도 져 주라는 거다. 굳이 누구라고는 말 안해도 정말로 나이값 덩치값 못하는 사람이 꼭 있다. 처음에는 나 혼자 이렇게 생각하는 거겠거니, 자격지심이겠거니, 하고 참았는데 정말 지금 생각해봐도 왜 저러나 싶다. 그래도 이제 한 달 남았으니까 ~ 집에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정말 기분이 어떨 지 궁금하다.

호스트 가족 소개를 하려다가 본의아니게 좀 욕을 한 거 같은데 사실 욕 할 의도는 없었다. 그냥 있었던 일을 전한 것 뿐이지.ㅎㅎ

그래두 나는 나를 9개월동안 거둬주셨다는 거에 감사하며 말 잘듣구 잘 살고 있다. 정말 쌓인 게 너무 많고 예비 교환학생들도 (다는 아니지만 그래두 혹시나 해서) 힘든 일들 많겠지만 다들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본다. 아 오늘 너무 피곤한데 갑자기 지금까지 중간에 포기 안하고 여기까지 온 나를 생각하니까 갑자기 뿌듯하고 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