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터네셔널 클럽 두 번째 모임이 있는 날!

학교를 마치고 클럽 전용 교실로 올라갔다.

지난 모임 때 이야기를 나누었던 선생님이 날 보고는 무척 반가워 하시면서 

공유할 거리라도 가져왔냐고 하시길래 마침 어제 프리젠테이션 때문에 가방에 넣어두었던 외장하드를 연결해서

사진들을 보여주었더니 애들이 굉장히 좋아했다ㅎㅎ

새라랑 나나카도 도착해서 셋이 열심히 수다떨고!

나나카가 아무래도 한국인인 내가 편한지 좀 더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눈치인데 영어를 너무 못해서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다.

1월에 왔으면 열 달 된 지금쯤은 그래도 일상회화는 가능해야 할 텐데,

집에서 가족들이랑 일어만 쓴다고 하니..역시 언어는 사용할수록 느는 것 같다.

새라한테 한글도 가르쳐 주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오피서들을 뽑는다길래 준비도 안 했는데 어쩌지 고민하다 그냥 무작정 손들고 나갔다.

공약을 말해 보라길래 영어가 너희처럼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 문화를 남들과 공유하는 것은 내 기쁨이자

특기이다, 너희가 아직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으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한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보여주겠다. 이런 일은 내 전문이니 믿고 맏겨달라ㅋㅋㅋㅋㅋㅋㅋ고 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나도 모르게 말이 술술 나와서 나도 신기했다.

어쨌든 무사히 말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와서 서너 명의 공약을 듣고 투표를 했다.

내가 뽑힐 거라고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덜컥 프레지던트는 소줭백이라길래 깜짝 놀랐다.

이왕 된 거 진짜 잘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나가서는 내가 한국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게 정말 맞기 때문에..

더군다나 여기 애들은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 붙어있는지조차 모르는 애들이 대다수인 데다 생각보다 견문도 좁아서

회장일을 정말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나름대로의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다ㅋㅋ

애들도 다 축하한다고 한마디씩 해주고 기분도 정말 좋았는데

그런 나한테 찬물을 끼얹은 건 부담당 선생님의 태도.

한국인인 나와 일본인인 나나카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확연히 달라서 또 울컥했다.

미국인들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환상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직접 경험할 때면 평정심을 찾기가 힘들다 정말..

나나카가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대답도 겨우 하는 수준인데 그런 애를 잡고

자기는 일본이 너무너무 좋다, 일본 가고 싶다, 일본 학교는 어떠냐, 일본 문화좀 소개해달라,

 여기 생활 안 힘드냐, 일식이 너무 좋아서 스시만 맨날 먹고 살고 싶다, 그런 질문들을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가며 던지는데

난 옆에서 무슨 투명인간도 아니고..정말 푸대접 받는 기분이었다.

더 화나는 건 중간중간 나한테 how about you?하고 마지못해 물어보는 거.

거기다 대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더 무시당하겠다 싶어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어쨌든 정말 화가 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일본이 국가브랜드이미지 화려하게 포장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 방식이 남의 문화 훔쳐다 쓰고 이것저것 보기좋게 바꾸고 뚜껑을 열어보면 거짓과 날조 일색인 것만 아니라면

칭찬해 줄 만 하지만. 그게 사실이니 더 화가 나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서 종종 무의식적으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과 마주치는데..

이런 것들이 모여 '타지'의 '타인'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지금의 내가 점점 그 상황에 대해 예민해지고 있는 것 같다.

미국 와서 가끔 느낀 건데 또래 애들은 정말 말 그대로 이런 거에 '무지해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이 먹은 어른들이 더 할 때가 많다. 사실 이건 미국만이 아니라 어딜 가더라도 그렇지만.

미국이 생각보다 정말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시대착오적인 사상을 품고 정말 오리지널 인종차별자로 남아 있는 어른들도 많고.

자기들 입으로 미국인들은 외국인들이 자꾸 자기들 사회에 개입하는 걸 싫어한다고,

멍청해서 그러니 이해하라며 반강제적 합리화를 시키는데 내가 뭐라 할 말이 있겠냐만은..

어쨌든 뉴욕 구석의 한 고등학교 인터네셔널 클럽 스무 명이라도

내가 그들의 견문을 조금이라도 넓혀 놓을 수 있다면 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밴드 애들이나 학교 친구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인종차별적인 얘기를 하거나

한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다 똑같은 거 아니냐는 생각없는 소리를 하면

절대 그냥 안 넘어가고 폭풍 잔소리를 해댔기 때문에 그나마 주변 애들은 덜하니 망정이지ㅠㅠ

친구들까지 날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무시했다면 정말 난 이곳에 발붙이고 살 수도 없었을 것 같다.

그래도 회장이라는 이름 하에, 특권이라면 특권으로 인터네셔널 클럽 일 정말 잘 해봐야겠다!

코리아데이도 담당쌤이 만들어 보라고 하셔서 완전 열심히 자료준비중^___^

한국이든 미국이든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는 건 어딜 가도 마찬가지려니 하고

더 큰 일을 위해 오늘 기분 나빴던 건 잊을 거다.